박수근(1914~1965)은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독창적인 질감 표현 기법인 '마티에르'를 통해 서민적인 주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형태와 거친 표면 질감이 특징이며, 한국적인 정서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박수근의 미술 기법 중에서도 특히 '마티에르' 기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그가 이를 어떻게 활용하여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했는지 살펴본다.
1. 마티에르 기법이란?
마티에르(matière)란 프랑스어로 '재료' 또는 '질감'을 의미하며, 미술에서는 작품의 표면 효과를 강조하는 기법을 뜻한다. 마티에르 기법은 주로 유화에서 사용되며, 붓터치나 물감의 두께를 조절해 독특한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고흐, 르누아르, 피카소 등 많은 화가들이 이를 활용해 작품의 개성을 드러냈다.
박수근의 경우, 마티에르 기법을 발전시켜 자신의 화풍을 확립했다. 그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면서 두껍고 거친 표면을 만들어냈으며, 그 위에 섬세한 선과 형태를 더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의 작품은 마치 오래된 돌벽이나 나무결처럼 보이며, 이러한 질감 표현 덕분에 더욱 따뜻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이는 박수근이 지향했던 서민적 감성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특징이다.
그가 마티에르를 활용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두 여인〉, 〈빨래터〉, 〈아이 업은 소녀〉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단순한 구도와 제한된 색상을 사용하면서도, 표면의 질감이 주는 입체감 덕분에 깊이 있는 감동을 준다.
2. 박수근의 마티에르 기법 특징
박수근의 마티에르 기법은 단순히 거친 질감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작품의 정서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는 유화 물감을 캔버스에 여러 번 덧칠하고, 이를 마치 조각하듯이 긁어내거나 두텁게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독창적인 표현을 완성했다.
첫째, 표면의 돌처럼 거친 질감이 특징적이다. 이는 박수근이 어린 시절부터 접했던 한국의 자연과 전통적인 벽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을 보면 마치 바위나 흙벽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며, 이는 한국적인 정서를 강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둘째, 색채의 절제와 단순화이다. 박수근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회색, 갈색, 베이지 톤이 주를 이룬다. 이는 마티에르 기법과 결합되면서 더욱 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런 색감은 그의 작품이 주는 서정성과 따뜻함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된다.
셋째, 인물과 사물의 단순화된 형태이다. 박수근은 현실적인 인물 묘사보다 단순한 형태를 강조했다.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은 대개 얼굴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손이나 발도 생략되거나 매우 간결하게 표현된다. 이는 작품의 질감과 조화를 이루면서, 감상자가 본질적인 정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박수근의 작품은 단순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3. 박수근 작품에서 마티에르 기법의 의미
박수근이 마티에르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유는 단순한 기법적 실험이 아니라, 그의 철학과 깊이 연결된 표현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거친 질감은 한국 서민들의 삶을 상징한다.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은 전쟁의 상처가 깊었고, 대다수의 국민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박수근은 이러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투박한 표면 질감을 통해 시대적 감성을 담아냈다. 마치 오래된 돌담처럼,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고된 삶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마티에르 기법은 한국적인 미의식과도 연결된다. 한국 전통 미술에서는 여백과 단순함을 중요하게 여기며, 자연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이 많았다. 박수근은 이러한 전통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마티에르 기법을 통해 한국적 정서를 강하게 드러냈다.
특히, 그의 작품이 주는 따뜻한 감동은 이 질감 덕분에 더욱 깊어진다. 거칠지만 부드러운 느낌,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구도는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그의 그림을 보면 누구나 어릴 적 고향의 풍경이나 가족의 따뜻한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러한 기법 덕분이다.
박수근의 마티에르 기법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그의 철학과 시대적 배경이 담긴 중요한 요소였다. 그의 작품이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이러한 독창적인 기법이 작품의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결론
박수근은 마티에르 기법을 통해 한국적인 미감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화가였다. 거친 표면과 단순한 형태 속에서도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는 그의 작품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단순히 서양의 기법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하여 한국적인 정서와 시대적 감각을 담아냈다.
오늘날 박수근의 작품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의 독창적인 화풍은 많은 후배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박수근의 마티에르 기법이 보여주는 깊은 정서와 서민적인 감성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